
영화 어쩔 수가 없다는 제목부터가 묘하게 찝찝합니다. 변명처럼 들리기도 하고, 동시에 누군가의 현실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버리는 잔인한 단어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안정적이라고 믿었던 삶이 한순간에 무너진 뒤, 사람이 어떤식으로 자기 합리화를 하며 끝까지 버티려고 하는지, 그 과정이 얼마나 무섭게 또는 우스꽝스럽게 변질될 수 있을지를 따라갑니다. 특히 이병헌 배우는 만수라는 인물을 통해, 평범한 가장의 체면과 불안, 분노와 자기합리화가 어떻게 뒤섞여 폭주하는지를 촘촘하게 보여줍니다. 관객은 스릴러의 긴장감을 따라가면서도, 어느 순간 “저게 남 얘기만은 아닌데…”라는 불편한 공감에 걸려 넘어지게 됩니다. 영화가 남기는 여운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핑계가 아닌 생존의 언어
누군가에게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은 핑계가 아니라 생존의 언어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반복되는 순간, 사람은 자기 행동의 경계를 스스로 지워버리기도 하죠. 어쩔 수가 없다가 흥행한 이유는 해고-재취업-성공의 서사가 아니라 중년이 해고 이후의 마음이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줍니다. 이야기의 출발은 25년 경력자의 제지 전무가인 만수는 만족스러운 일상과 가족을 가진 인물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그 행복의 불행희 시작은 회사로부터 돌연 해고 통보를 받으며 균열이 시작됩니다.
"미안합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라는 통보 문장 후 만수는 철저하게 무너져버립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사건 자체보다, 사건을 받아드리고 대처하는 방식입니다. 만수는 그동안 성실히 회사를 위해 살아왔다는 확신이 강한 사람이고, 그래서 더 크게 무너집니다.
나는 규칙을 지켰고 최선을 다했는데 왜 나에게 이런일이라는 감정은 이제 나도 이런 규칙을 안 지켜도 되나하는 마음으로 뒤집혀버리죠. 이 영화가 블랙코미디와 스릴러의 결을 동시에 갖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웃긴데 웃을 수도 없고 이해되는데 이해하고 싶지 않은 감정들의 요동을 만들어내죠. 저도 이 영화를 보면서 묘하게 찝찝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지만 그의 방식은 진짜 어쩔수가 없었던 것인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그 불편함을 관객이 끝까지 놓지 않게 만드는 핵심에는 이병헌 배우의 연기가 있습니다. 이병헌은 감정을 다 보여주기 보다, 아주 작은 표정 변화와 시선 처리로 인물을 설득합니다. 무너진 자존심을 감추려는 괜찮은 척의 눈빛을 보여주다가, 또 한 번은 도망갈 곳 없는 사람이 가진 공포를 눈동자 깊이로 끌어올립니다.
재취업의 과정
해고된 만수가 다시 일자리를 얻기 위해 경쟁자들을 제거해 나간다는 설정은 단순하면서도 잔혹합니다. 영화는 사건을 쌓아 올리는 방식의 표현이 아니라 왜 그렇게까지 되었나에 맞춰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만수는 처음엔 정당한 방법을 찾으려 애쓰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빠르게 과감하게 자신을 석득합니다. 가족을 위해서, 살기 위해서, 사회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으니까 하는 자기 합리화를 하며 그 말들이 그를 움직이는 엔진이 됩니다.
영화에서의 심리변화는 존엄의 붕괴- 분노의 수렴- 위험의 확신으로 만수의 심리 변화는 계단 처럼 내려갑니다. 처음 충격이 아니라 수치심의 가까운 감정을 보여줍니다. 해고는 단순한 직업의 상실이 아닌, 그가 쌓아온 삶과 정체성의 붕괴였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는 분노입니다. 회사와 사회로 분노가 향했다가, 어느 순간 구직자들, 더 나아가 자기 자신에게까지 돌아옵니다. 마지막은 확신입니다. 이 지점이 가장 무섭습니다. 사람은 불안할 때 흔들리지만, 오히려 스스로 납득시키면 더 단단하게 폭주하게 됩니다. 만수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반복할수록 그 말이 죄책감을 지우는 지우개 처럼 작동한다는 걸 보여줍니다.
이병헌 배우는 이 영화를 통해서 균형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중요한 장면에서 조차 과시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보다, 더 지질하고 더 초라한 쪽으로 연기를 기울입니다. 덕분에 관객은 이병헌이 연기를 잘한다에서 멈추지 않고, 만수라는 사람이 진짜 존재하는 것 같다로 생각을하게 됩니다. 현실감을 살려 연기를 보여줘 이 작품에서 특히나 설득력 있게 작동합니다.
결론
영화는 해고된 가장의 재기를 이야기 하는게 아닌, 사람이 상황 속에서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방식이 어떻게 삶을 바꾸고, 더 나아가 사람을 바꿔버리는지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줄거리는 강력하지만, 사실 더 강렬한 건 그 줄거리를 받치는 감정의 흐름입니다.
만수는 처음부터 잔인한 사람이 아니였는데, 누구나 한 번쯤 현실 앞에서 어쩔 수 없지라고 말해본 적이 있으니까 영화는 그 익숙한 문장이 어느 순간부터 칼처럼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보여줍니다.
이병헌의 연기는 작품의 중심축입니다. 눈빛으로 먼저 무너지고, 말로는 버티고, 행동으로는 선을 넘어버리는 감정의 순서를 설계해 관객을 끌고 갑니다. 그의 캐릭터 해석은 만수를 ‘특수한 악’이 아니라 ‘현실 속 위기자’로 만들며, 그 선택이 관객의 불편한 공감을 끝까지 유지시키죠. 그리고 결말이 정답을 주지 않기에, 우리는 영화관을 나서도 쉽게 잊지 못합니다. “나의 ‘어쩔 수 없다’는 어디까지였지?”라는 질문이 남으니까요.
결국 이 작품이 건네는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사회는 개인을 벼랑으로 몰 수 있고, 개인은 그 벼랑에서 스스로를 설득하며 살아남으려 합니다. 문제는 그 설득이 너무 매끄러워질 때, 사람은 스스로도 모르게 위험한 방향으로 가속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