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이비드 슈위머를 떠올리면 많은 사람이 먼저 “로스 겔러”를 말한다. 〈프렌즈〉의 인기만큼이나 로스라는 캐릭터는 사랑과 미움, 공감과 반감을 동시에 불러냈고, 그만큼 배우의 이미지도 한쪽으로 굳어버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미지가 너무 강했기 때문에 슈위머의 출발점과 본래의 결은 자주 가려졌다. 그는 원래 시트콤형 스타가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연극’을 선택해 무대 위에서 감정과 리듬을 다듬어온 배우였다. 이 글은 그가 왜 어린 나이에 연극을 선택했는지(2), 어떻게 로스 겔러라는 복잡한 캐릭터를 맡게 되었는지(16), 그리고 프렌즈 이후 ‘코미디 스타’라는 틀을 벗어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이미지 탈피를 시도했는지(33)를 하나의 흐름으로 엮는다. 마지막으로 최근 들어 다시 커지는 “데이비드 슈위머 재평가”(80)가 단순한 향수나 유행이 아니라, 연기라는 직업에 대한 태도와 선택의 축적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짚어본다. 로스를 다시 보면, 그 안에는 배우가 숨겨둔 기술이 아니라 배우가 끝까지 버티며 쌓아온 연기의 밀도가 남아 있다.
왜 그는 일찍부터 ‘연극’을 택했을까
데이비드 슈위머의 커리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출발선을 다시 세팅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종종 TV에서 크게 성공한 배우를 “원래부터 화면 체질이었겠지”라고 단정한다. 하지만 슈위머의 경우, 시작의 방향이 조금 다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연극을 선택했고, 무대에서 감정을 배웠다. 여기서 말하는 감정은 “울고 웃는” 단순한 표정의 문제가 아니다. 관객이 바로 앞에 있는 상황에서 호흡을 어디서 끊고, 대사를 어떤 리듬으로 던지며, 상대의 에너지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몸에 새기는 과정이다. 무대는 숨길 수 없고, 대충 넘어갈 수 없다. 작은 흔들림도 객석에 전달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정직한 방식으로 연기를 익히게 된다.
그래서 연극을 일찍 선택한 배우들은 공통적으로 ‘즉흥에 강한 편’이다. 완벽한 대본과 편집이 없는 공간에서, 매일 같은 장면을 반복하면서도 매일 새롭게 살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슈위머가 가진 장점도 여기서부터 자란다. 그가 훗날 시트콤에서 보여준 과장된 표정, 몸을 던지는 슬랩스틱, 갑자기 터지는 감정의 폭발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무대에서 길러진 리듬이 TV라는 포맷 안에서 다른 형태로 변주된 결과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문제는, 이 출발선이 대중에게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TV는 캐릭터를 남기고, 캐릭터는 배우를 덮는다. 슈위머에게도 그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 덮임은 로스 겔러를 맡는 순간부터 아주 강하게 시작된다.
로스 겔러 캐스팅, ‘복잡한 남자’를 웃기게 만드는 기술
로스 겔러는 〈프렌즈〉에서 가장 난이도 높은 축에 속하는 캐릭터다. 단순히 웃기기만 하면 되는 인물이 아니다. 지적이면서도 불안하고, 다정하면서도 집착하며, 낭만을 말하지만 동시에 현실에서 자주 찌질해진다. 이런 캐릭터는 배우가 조금만 실수해도 시청자에게 “불편함”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로스는 애초에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역할이었다. 그런데도 제작진이 슈위머에게 로스를 맡긴 것은, 그가 가진 연극적 기반—즉 리듬과 반응, 그리고 감정의 급격한 전환을 ‘웃음’으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봤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로스의 코미디는 말장난보다 ‘상황과 감정’에서 터진다. 예를 들어, 그는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쓰다가도 어느 순간 무너지고, 그 무너짐이 과장된 몸짓으로 폭발한다. 이때 중요한 건 ‘과장’이 아니라 ‘정확한 타이밍’이다. 관객이 웃기 직전에 터뜨려야 하고, 너무 빨라도 너무 늦어도 안 된다. 슈위머는 이 타이밍을 잘 안다. 그래서 로스는 때로는 미움받지만, 동시에 장면을 끌고 가는 힘이 있다. 불편함이 생겨도 시선을 떼기 어렵고, 결국 “저건 연기를 잘해서 더 짜증나는 거야”라는 이상한 결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배우에게는 억울한 칭찬이지만, 그만큼 연기가 캐릭터를 ‘진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성공에는 대가가 있다. 로스는 슈위머에게 엄청난 인지도를 줬지만, 동시에 그를 “시트콤 코미디 배우”라는 틀에 가둬버렸다. 그래서 프렌즈 이후, 그는 꽤 이른 시점부터 이미지 탈피라는 어려운 숙제를 맞닥뜨린다.
이미지 탈피의 고통, 그리고 ‘재평가’가 시작되는 순간
프렌즈가 끝난 뒤, 많은 시트콤 배우들이 비슷한 벽을 만난다. 캐릭터가 너무 유명해 배우의 다른 얼굴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데이비드 슈위머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로스는 단순한 ‘인기 캐릭터’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논쟁적인 캐릭터였다. 그러니 슈위머가 다른 작품에서 진지한 얼굴을 보여주려고 할 때마다 대중은 무의식적으로 로스를 겹쳐 본다. 이때 배우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로스의 그림자를 이용해 비슷한 역할을 반복하는 것, 다른 하나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혀 다른 결을 보여주며 이미지를 분해하는 것이다. 슈위머가 택한 쪽은 후자에 가깝다. 즉각적인 환호를 얻기보다, 천천히 “나는 캐릭터가 아니라 배우다”를 증명하는 길이다.
이 과정은 빠르게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왜 예전만큼 안 보이지?” 같은 오해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런 선택은 이상하게 ‘신뢰’로 바뀐다. 유행을 좇아 과장된 변신을 하기보다, 자기가 잘하는 연기의 밀도를 유지한 채 포지션을 재정립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최근 몇 년 사이 데이비드 슈위머에 대한 재평가가 생겨난다. 사람들은 프렌즈를 다시 보며 깨닫는다. 로스가 단순히 유치했던 게 아니라, 그 유치함을 ‘정교하게’ 설계하고 설득해낸 연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미움받는 캐릭터를 끝까지 캐릭터로 살려낸 배우의 기술이, 시간이 지나서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데이비드 슈위머의 재평가는 “갑자기 다시 뜬 배우”라는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연극으로 다져진 기본기(2), 로스라는 복잡한 역할을 소화한 리듬과 감정의 기술(16), 그리고 프렌즈 이후 이미지 탈피를 위해 감수한 느린 선택들(33)이 합쳐져 지금의 평가를 만든다. 다시 말해, 그는 한 번의 히트로 끝난 배우가 아니라, 히트 이후의 태도로 자신을 증명한 배우다. 그래서 프렌즈를 다시 볼수록, 로스가 아니라 슈위머가 남는다.